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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여 자녀들에게 이렇게 신앙 전수하라

삶의 문제를 만날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나님께서 하실 일(요 11: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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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할일을 할 때에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대해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께 먼저 오늘 본문과 관련 된 넌센스 퀴즈를 하나 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 둘 중에 누구를 더 사랑하셨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은 마르다를 더 사랑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은 마르다를 사랑하셔서 죽기 직전에 십자가 상에서 마르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바로 목 마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의 성은 목씨이고, 이름은 마르다 였다고 하네요^^ 

이스라엘은 현재 전쟁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향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우리가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평화를 이루도록 전쟁을 멈출 힘도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무기를 지원하거나 이란의 핵무기를 다 없애 버릴 수 있는 힘도 없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적대군인 하마스와 헤즈볼라와 이란 그리고 러시아 등이 없어지도록 만들 수도 없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 마르다와 마리아 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의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자를 치료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수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또한 신자로써 믿음을 가지고 죽었다가 예수님 재림 하실 때에 다시 부활 할 것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을 도우시고, 돌보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찾아오는 절벽들 앞에서 무너질 때가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셔! 그분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지켜주셔 고백하지만, 현실에서 통장의 잔고를 보면서 좌절하고 절망할 때도 있습니다.

한 순간에 내일은 잘 살 수 있을까? 미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애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근심하며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혜 없이는 하루하루를 살아 갈 수 없다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절망하고 낙심 해 있을 때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무엇을 해야 할지 소망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이루시도록 하기 위해서 끝까지 절망하지 않고 주님이 하실 일에 기대하는 믿음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어려움과 두려움이 찾아 올 때는 언제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 때 입니다.
처음에는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연구해야 합니다.  

21절과 마르다와 37절에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의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병든 자를 치료하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다는 것은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때 당시에 죽은 자를 다시 살린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르다를 행해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날 것을 선언하십니다.  

 

 

마르다는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선포하신 말씀에 대해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안다고 고백합니다.
오늘날에 봤을 때에도 2천년 당시에 부활을 알았다는 것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하지만 지금 예수님께서 살리신다는 믿음이 없었습니다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후에 부활하실 것과 신자의 부활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에 죽은 자들을 살릴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믿음은? 미래에만, 죽고 난 이후에만 부활의 기적이 있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지금도, 현재에도 부활의 기적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은? 생명의 주관자가 예수님이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나사로에게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날 수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요.

또한 부활은?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살아난 것처럼 다시 부활의 몸으로 부활 하실 것을 믿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나사로의 다시 살아남을 보고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 때에 부활의 확신을 가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신 것은? 현재에도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하실 일들에 대해 믿음을 가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자신을 부활이요 생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은 생사를 주관하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과 부활의 연결점은 아는 지식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우리도 부활에 관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를 살릴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예수님을 아는 지식은 있지만 실제로 그 지식이 믿음으로 연결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함께 나눠보기 원합니다. 

 

예수님은 왜 마르다와 유대인들에게 돌문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마르다와 유대인들은 시체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고 열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엑 40절에서 예수님은 내 말이 내 말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4절 이것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을 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을 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신다는 말씀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보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에 고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또는 듣기는 들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듣고도 순종하지 못하며 방황하며 살아갈 때에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음에 확신을 갖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행동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은 깊은 고난과 박해 가운데서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풀어나게 하신 것!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신 것!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no cross no glory! 십자가의 영광은 십자가의 고난과 불가분의 관계를 말합니다.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가 쉽게 살고, 대충 살고, 거짓말을 하든 어떻게든 편안하게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신자는 고난 가운데 뛰어들어 고난을 뒤에 찾아오는 영광을 체험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 없을 때에 두렵습니다!

 

 

죽은자가 살아나고 기적과 이적들이 일어나는 일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리고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나사로가 50년 더 산다고 그것은 부활이 될 수 없습니다. 부활이 아니면 우리는 어차피 다시 죽는다. 하지만 나사로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심을 보여주는 이정표, 혹은 증거가 됩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부활하게 된 것도 믿을 수 있게 됩니다.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이 중요한 이유는? 나사로의 죽음으로 슬퍼했던 자들이 기쁨을 얻고 유가족이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바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유대인들로 믿게 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대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유대인들이 믿게 하려하심에 있습니다.

41절 이하 돌이 옮겨 놓을 때에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라 보신다. 세상에서 낙심하고 눈을 내리 깔고 땅을 쳐다보며 낙심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눈 손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참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는 사람들은 두손을 들고 하나님께서 역사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될 때 작은 걱정과 근심이 살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을 들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러러 보지 않는데서 문제가 됩니다. 주님께 배워야 할 기도는 이런 기도입니다. 현실을 바라보면 돌이고 고난이지만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바라보면 감사의 조건들이 목록처럼 이미 들어서 있습니다. 하늘에 사는 영광을 미리 믿음으로 바로보는 실상이 이 땅가운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직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기도하며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회복되어 천국에 함께 있다는 미래를 알고 있습니다. 

7,14장 한 새사람 전천년설 예수님을 믿고 하늘 위에 유대인과믿음안에서 순교와 헌신 한 자들이 흰옷을 입고 있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부활과 생명의 사명으로 보내신 봐 되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때에 유대인들도 부활의 기쁨에 참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3절 나사로야 나오라! 돌을 치우라고 하신 이유는? 돌 무덤에서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의 그림자입니다. 왜냐하면 나사로는 두 번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보지 않게 하실 것이다라는 것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44절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5:25절이 이루어진 사건이다). 사망권세를 이기게하시며 살아나게 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풀어 놓아 다니게 하는 것, 거듭난 사람을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구원을 받아도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이다. 돈 문을 열어주고, 수건을 풀어 놓아 다니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회사에 막혀 있는 업무들권세와 죽음에 두려워하며 묵여 있는 자를 살수 있도록 돌문을 열고 수건을 풀어 놓아 다니는 역할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기적과 이적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헌신하는 자들이있을 때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이나 다른 곳으로 선교사로 나가는데 있지 않습니다. 먼저는 수족, 나사로를 쌓던 수건을 풀어주고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 전파이다. 우리는 주변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유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야 한다.예수 그리스도를 주변에 전하는 삶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적과 기적에도 관심이 없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아가는진리의 말씀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47-48절에 예수님을 통해 모여드는 공회(집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예수님을 따를까 두려웠습니다. 사실 빌라도나 로마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위험 인물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의 집권이 예수님께 넘어가는 것이 싫었다. 이를 로마 사람들이 가나안 땅과 민족을 빼앗길 것으로 연결하여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단지 잣니의 권력이 예수님께 집중되어 로마에게 힘을 쓸 수 없었으며, 백성에게 아무런 권력을 행사 할 수 없다는 잘못된 판단에서 온 것입니다.

47-48절 그 사람 하나 죽이면 이 나라가 살텐데 무슨 걱정이냐! 하나님은 그 인간의 사악한 동기를 주님께서 쓰시기 위해 때로는 허용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겐 때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하나님은 인간의 악한 동기를 이용하여 사용하신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선을 행하다가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계획 중에 일환이라고 생각하면 우리의 고난을 하나도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여론 조사 중에 한사람의 뜻이 부풀려져서 발표 된 것이 많다. 여론의 욕망의 의견에 따라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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