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0:1~16,28절, 레 11:1~9,21절,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가 이루어진 하나님의 시간으로 함께 복음에 대해 자녀들에게 신앙전수를 나누고자 합니다.
행 10장은 성경 전체의 흐름을 바꾸는 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타락한 이후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모든 민족이 복(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자기들만 선택 받았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 의해 복음에 길이 막혔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완전한 이방인 로마 사람에게 전해지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고, 세례까지 받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첫째, 이방인 고넬료의 교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시작되었다.
질문1.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경건과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경건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1절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사도행전 10:1-2절)
고넬료는 로마 군인의 백부장이었다. 그가 경건했던 이유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를 만나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구원받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천하 사람 중에 구원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행 4:12절).
이방인이 유대인들과 함께 원 뉴맨이 되는 순간이다(엡 2:15절). 고넬료는 아직 구원 받지 못했지만 구원을 받는 단계에 있는 사람이다. 마치 베드로와 바울이 유대인이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크리스챤이 된 것과 같다. 이들은 유대인이었을 때는 구원을 못 받는 것으로 단정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에서 크리스챤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이다. 이들이 곧 마음에 할례를 받아 성령으로 신령한 자요. 남은 자인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 중에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을 받은 남은 자들이 있는 것이다.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은 성령의 충만을 통해 열리는 것이다.
유대인의 관점으로는 이방인 로마 백부장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원수 된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고넬료가 경건한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며 많은 백성을 구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고 말씀하신다. 이제는 유대인만 경건하지 않음을 보여주신다.
그러나 고넬료가 경건해서 하나님께서 만나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만나주셨기 때문에 그가 경건한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이 만나주셨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제하며 기도할 수 있었다.
2절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는 고넬료를 통해 경건을 기도와 구제라고 말씀하신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프라이드를 성전과 율법으로 여겼다. 이것을 경건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진정한 경건은 성전과
율법이 아니라 구제와 기도라고 하시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열려 있는 우리 내면의 창이다. 그리고 구제는 이웃을 향해 열려 있는 나의 외면이 창이다.
유대인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성전과 율법을 아무리 붙잡고 있어도 그것이 하나님께 열리지 않고 이웃에게 열려 있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경건이 없는 것이다.
3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사도행전 10:3-5절)
그런데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고넬료가 하나님께 구제와 기도를 하여도 지금 이 상태에서 죽게 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경건하다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함을 유대인과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는
것이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고넬료는 구원을 받는 과정 중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선택함을 받고 버림을 받았다는 대체주의가 아니라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돌아오기까지
잠시 우둔하게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대인들도 잠시 우둔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차가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되는 때가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고넬료가 유대인이었던 베드로를 통해서 복음을 받아 드렸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유대인들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해서이다. 이방인에게도 성령과 하나님의 사랑이 임함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창 12:3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을 받는 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복음을 이방인들도 동일하게 성령을 통해서 받게 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이 경건할 수 있는 이유를 율법과 성전을 맡은 자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고넬료를 통해 경건한 사람은 구제와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기도는 하나님께 열려
있는 우리 내면의 창이기 때문이다. 구제는 이웃을 향해 열려 있는 나의 외면의 창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도들을 통해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기를 원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성전과 율법을 붙잡으려 했다. 베드로가 욥바에 머물고 있음을 통해서 구약의 요나 선지자가
앗수르의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했을 때 불순종하여 욥바에서 배를 타고
다시스로 가려고 했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결국 요나가 큰 물고기에 3일 동안 있다가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니느웨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것처럼,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 이방인의 첫 구원의 문이 열리게 하신 것이다.
둘째, 이방인과 교제는 예수님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질문2. 왜 예수님은 부정한 것들을 잡아 먹으라고 하셨고, 또한 왜 베드로는 속된 것을 잡아 먹을 수 없다고 말했을까요?
11절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절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절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절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사도행전 10:11-15절)
11절에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지금까지 닫힌 영적인 사실이 공개 됨을 뜻한다. 그것이 이방에 대한 전도의 문이 베드로를 통해서 열려 짐을 말한다.
12절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다. 다 부정하다기 보다는 그 안에 배로 기는 것과 되새김질 하지 않는 네 발 가진 짐승과 공중에 나는 부정한 것들이 있었다. 특별히 28절을 살펴 볼 때 유대인들은 코셔(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고, 정결한 음식을 먹는 음식 법)를 하지 않는 이방인들을 부정한 짐승으로 여겼다.
13절 잡아는 뒤오로, 희생 제사를 드리다라는 뜻이다. 부정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방인을 잡아 먹으라는 뜻이다. 이것은 이방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준다. 이 마음은 아브라함 때부터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는 말씀과 동일한 하나님의 이방인을 향한 사랑의 마음과 이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만이 아는 사실임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큰 보자기의 환상을 통해 베드로가 경건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방인 고넬료를 향한 경건의 기준을 바꾸신다. 하나님은 그들이 가장 속되고, 부정하다는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신다.
14절에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 레 11:3,9,21절 되새김과 굽이 갈라진 것, 비늘이 있는 것 그리고 다리의 털은 이방의 문화와 타락한 사람들을 상징하는 세상과 접촉 되지 않음을 뜻한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세기 12:3b절)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요엘 2:28a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라디아서 3:14절)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갈라디아서 3:8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족속이 복을 받기를 원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으로 인해 자신들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생각하고, 말씀을 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으로부터 예언 된 성령을 먼저 유대인들에게 부어 주심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원래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이
이방인에게까지 전해지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육체에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복음을 먼저 받고,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14절에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의 헬라어는 무엇이며, 베드로는 왜 예수님께서 잡아먹으라고 한 동물을
결코 먹지 않겠다고 말했는가?
답: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의 헬라어는 “판 코이논 카이 아카다르톤” (πᾶν κοινὸν καὶ ἀκάθαρτον)이다.
레위기 11장에 언급 된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고백이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향한 선교의 문을 여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을 알지 못했다.
25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절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절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절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사도행전 10:25-29절)
질문? 레위기 1-10장까지 제사제도를 말하다가 왜 갑자기 레위기 11장에서 먹는 것을 이야기 할까?
답! 제사의 예배도 중요하지만 일상생활 속에 성결한 삶과 거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브루타는 성경을 통해 어떻게 성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나누는 것이다.
모든 짐승 중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레위기 11:3절)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레위기 11:9절)
다만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레위기 11:21절)
질문?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굽이 갈라진 것과 새김질하는 짐승을 잡아먹도록 허락하셨을까?
답: 굽이 갈라진 것은? 몸이 굽을 통하여 땅과 닿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과 구별되어야 함을 뜻한다. 되새김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되새겨 말씀을 반복적으로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을 뜻한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세상 사람들(이방인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간다. 구별되는 법을 쉐마와
하브루타로 매일 나눈다.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레위기 11:9절)
질문? 왜 물고기 중에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물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물은 세상을 뜻한다. 비늘이 있으면 물을 직접적으로 접촉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먹는 음식에서부터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것을
먹지 않기를원하시며, 구별되게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다만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레위기 11:21절)
질문! 왜 곤충 중에 네 발로 기어 다니며 땅에서 뛰는 다리가 있고 곤충을 먹을 수 있을까?
털이 발바닥에 있는 메뚜기는 세상인 땅에 완전히 살을 붙으고 살지 않는다.
그런 곤충을 음식으로 구별하여 먹도록 하셨다.
상상 질문!
1. 땅과 물이 세상과 이방인을 뜻한다면 이방인 된 우리에게는 구약의 율법이 필요 없는 것인가?
2. 크리스챤도 유대인이 되어야 하는가?
3. 지금도 돼지 등의 부정한 짐승을 먹을 수 없는가?
알고 토론을 해야 삶에 변화가 생긴다. 탈무드는 모세오경의 해석 서이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셋째, 이방인과 교제는 성령의 충만을 받은 후에 연합되기 시작합니다.
질문 3. 왜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 부어지는 복은 성령의 충만을 통해서만 가능할까요?
38절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절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 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절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사도행전 10:38-40절)
38절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사역을 하셨음을 뜻하기도 하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예수님께서 성령과 능력을 충만하게 성도들에게 부어 주심으로 성도들의 영적인 눈이 띄어지게 하셨음을 전한다. 왜냐하면 베드로도 예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성령의 충만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회의를 하러 모였을 때도 유대인들을 두려워 문을 닫고 모였으며, 부활을 보면서 의심하는 제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변화 된 것은 위로부터 공급되어지는 성령의 충만을 받고 난 이후에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어지는 성령의 능력도 있었지만 성령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신 목적을 알게 된 된 것이다. 성령의 충만을 받기 전에는 절대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 할 수가 없다. 성령과 능력으로 입혀지기 전에는 두루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없을 뿐더러 선한 일도 행할 수 없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칠 수도 없다.
39~40절에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와 함께 한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모든 민족이 받을 복이 성령의 충만을 받은 베드로를 통하여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은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구약부터 원하셨다. 그 실질적인 원뉴맨,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사건이 되어지는 대표적인 사건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44절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절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사도행전 10:44-47절)
베드로가 복음의 증거와 성령의 충만함에 대해 설교를 하고 났을 때에 44절에 이 복음의 메시지를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려 오셨다. 백부장인 고넬료는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 120명의 성도와 같이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이다. 고넬료와 그와 함께 한 자들이 성령을 받고, 복음의 문이 이방인에게도 열려 졌음을 뜻한다.
이방인었던 교넬료가 받은 성령의 충만은 너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들을 통해 후에 가이사랴 지방과 로마와 유럽을 걸쳐 복음이 전해지는 첫 관문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을 통해서 유럽 전역과 북,남에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시 그들이 받았던 복음이 이스라엘에 다시 그들을 통해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뉴맨이 중요한 것은 유대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다시 이방인들이 제사장이 되어 다시 복음을 유대인들에게 전해진다. 이것은 오직 성령의 운동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 막중한 일을 이스라엘 포럼에게 주어진 열쇠입니다.
46~46절 성령의 충만을 받은 고넬료와 그의 가족과 이웃들이 방언을 받고, 하나님을 높일 때에 물로 세례를 베풀어짐이 시작된다. 물로써 세례가 베풀어짐은 구약으로는 육체와 마음의 할례를 받음을 의미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헐몬-시온산 회중 예배는 심방 하는 목회가 아니다. 기존 교인들이 한국 교회를 깨우고, 디아스포라를 깨우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하는 육적 알리야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는 영적인 알리야의 내용들에 대해 제일 앞장서서 섬기자 하나님은 이것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통해서 모든 민족에게 복이 전해지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의 충만수가 찰 때에 다시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 된다.
2. 44절에 “말씀 듣는”의 헬라어는 무엇이며, 세례를 받기 전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말씀 듣는”의 헬라어는 “투스 아쿠온타스 톤 로곤”(τοὺς ἀκούοντας τὸν λόγον)이다. 성령의 충만의 역사가 말씀을
들을 때에 임할 수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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