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윗이 성령님의 충만을 받고 주 예수님을 만났는지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말씀: 행 2:16~38; 마 22:42~45). 베드로가 행 4: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 받을 수 없다며 (예수 그리스도)외에 천하 사람 중에 구원 받을 이름이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 그리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는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자녀들에게도 구,신약의 백성을 포함하여 현재에 사는 우리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는지 나누셨으면 좋겠네요. (특별히 성령 세례와 성령의 충만도 본문의 원문을 살펴보면서 연구했으니 보시고 은혜 받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다윗 등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남은 자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은 구약에서 성령을 받고 미리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 중에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 등을 특정한 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선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을 한국 사람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먼저 이스라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수단의 특정성이라고 합니다.
수단의 특정성의 정의는? 창세기 12:3절, 혹은 22:18절에 네 씨로 말미암아(수단의 특정성)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그의 후손으로 태어날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예수님까지를 말합니다. 목표의 보편성은?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수단의 특정성은? 타락한 세상에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도 유대인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 예수님 안에서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복의 성립 조건은? 성령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구원 받게 하신다.둘째, 민 11:29절 모세에게 임한 영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게 하신다. 욜 2:32절 모든 민족이 성령을 받는다.
수단의 특정성에서 구약 백성들은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다윗 등 소수 만이 성령의 충만을 받아 미래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님을 보내주신 이후에 목표의 보편성에서는? 천하 만민이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의 충만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됨을 말합니다.
위의 표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로 시작된 구속사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그 중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와 새언약의 완성자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드리지 않자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황폐하게 되었습니다(마 23:37-28). 하지만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독립을 시작으로 다시 회복되고 있습니다.
마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다시 오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받지 않으면 예수님은 재림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마 23: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절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그들을 부르셔서 그들을 통해 구속사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롬 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또한 위의 도표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요 이스라엘의 모으심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 언약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드리지 않음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잠시 넘어지게 하셨고 그로 인해 이방에게 복음을 전달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방에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이방인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에 베드로였습니다. 유대인들을 통해 이방에 복음이 흘러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요. 첫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모으심으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데 유대인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윗을 성령충만함으로 미래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어떻게 이방인들도 성령님의 충만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지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구약에서 칠칠절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에 49일후 다음날이 오순절입니다. 유월절 이후에 7x7=49(칠칠절) 이후의 날이 칠칠칠절입니다. 하루 더하는 날, 50일 되는 날이 오순절(5x10=50)입니다.
오순절은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을 수확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려오고, 말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당시에 10번째 재앙이 있었던 날입니다. 10번째 재앙시에 애굽의 땅에 집 집마다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을 담당하는 천사들이 그 집을 넘어감으로 장자의 죽음을 면하였습니다. 넘어가다의 영어 패스 오버(Pass over)를 기념하여 유월절이라고 했습니다.
그 유월절 이후 49일 지난 칠철절에 모세는 시내산에서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은 유월절에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은 이후에 모세가 칠칠절에 하나님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들이 하나님께 말씀을 받은 날부터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 관계가 열리는 날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산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게 된 날입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유월절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유월절 50일 후에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이 임재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은 수단의 특정성에서 목표의 보편성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입니다. 수단의 특정으로 한정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복음이 있었다면 이제는 천하만민이 아브라함을 통해 주어졌던 복,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이 확산이 시작되는 장입니다.
특별히 행 10장에 고넬료는 유대인인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에 복음을 듣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구원받은 이방인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를 통해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의 말씀이 성취가 됩니다.
성령님을 모셔드리면 어떤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까? 성령님을 경험했을 때에 어떤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까? 성령이 오시면 사람은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행 2:2-4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누가는 의사로 신체에 대한 감각을 그림언어로 표현하였다. 강한 바람 같은 소리는 말씀이 귀에 임하심으로 말씀을 은혜 받는 귀가 열리게 된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도들은 함께 모여서 성령을 받고, 말씀을 듣기 위해 함께 모이는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의사였던 누가가 표현하는 그림언어는 성령님이 바람과 같은 소리입니다. 성령님의 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의사였던 누가는 신체기관을 이용하여 귀로부터 성령님의 임재 경험을 바람같은 소리로 표현했습니다. 믿음은 먼저 청각으로 들어야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불의 혀처럼 생긴 것이 한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 혀는 말로써 들으면 언어가 바뀌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하면 다를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쓰지 않던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말이 바뀌는 것입니다. 말을 친절하게하고, 겸손하게 합니다. 말이 바뀌고 말하는 기도가 바뀌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합니다. 한마디를 해도 나를 변화시키신 예수님을 자랑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동행했던 삶을 고백하는 설교로 사람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내가 좋아는 것, 내가 취미 삼는 것이 들려오다가 이제부터 말씀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은 언어가 바뀌는 것으로 사람을 살리는 언어와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의 뜻을 담은 기도로 바뀌는 것입니다. 다른 언어들로 말하는 것은 선교를 위하여 다른 언어들을 성령의 능력에 따라 말하게 하십니다.
행전에서 엑츠는? 복음을 들었으면 행동한다는 의미를 담습니다. 성령님이 강림하신 이후에 성령의 충만을 받은 많은 성도들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들려지는 복음의 메세지를 통하여 마음에 변화가 먼저 찾아왔고,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면서 중생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롬 10: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임재전에는 세상의 것과 내가 좋아했던 것을 들었지만 성령의 임재를 경험 할 때에 말씀을 듣게 됩니다. 말씀은 들으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혀의 변화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구원자 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으로부터 예언 메시아이심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이 중요한 것은? 이전 구약의 시대에는 수단의 특정성에 해당하는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다윗 등을 포함한 남은 자에 해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만 성령의충만을 받고,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목표의 보편성이 열리며 모든 민족에게 해당하는 유대인도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다윗과 같이 구약에 예언 된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 복음을 저하는 통로가 되어 하나님께서 구약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신 목적을 수행하는 선택된민족의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수단의 특정성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과 목표의 보편성을 지니는 유대인+이방인= 교회에게 성령의 충만이 내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것은 구약으로부터 예언 된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입니다(창 12:3). 복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이 모든 백성에게 부어 질 때에 구약에서는 미래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믿을 수 있고, 신약 시대에는 오신 예수님을, 지금은 다시 오실 예수님, 재림하실 예수님을 믿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족속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성령충만 사건입니다. 성령세례는 한번 받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경험하면 성령님이 한번 임하시면 안 떠나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3:16~17절에 성령세례는 성령님이 임재하셔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성령의 충만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은사와 복음을 전파하는 핌플래미, 성령님의 이끌리심을 받는 플래내스, 삶의 기쁨과 변화를 가져다는 플래로우가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삶의 변화에부터 능력 행함과 복음 전파까지 포함합니다.
성령님이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는 의미는? 이미 성령님이 인간의 몸 안에 임재해 계셔야지만 예수를 주라 고백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고전 12:3). 성령님이 인간의 몸에 먼저 임하실 때는 바로 누군가가 복음의 메세지를 전할 때에 성령님이 그 안에 임재합니다. 이 때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집니다(롬 10:10). 그런데 복음을 메세지를 들었지만 입술로 고백하지 않으면 중생과 거듭남이 일어나지 않습니다(롬 10:17).
여기서 거듭남과 구원을 받을 때가 성령의 세례를 받을 때입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시인할 때에 우리는 성령의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로 세례를 받습니다.
성령 세례에서 세례의 헬라어는? 밥티조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거듭남=중생(다시 태어남)을 경험하는 순간, 마음으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드리고, 입술 시인하는 순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성령의 충만 중에 능력행함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시작 점이 되기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22:43절에서 예수님은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다. 고백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이 이미 예수님 태어나기 1,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고 구원 받았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언제 성령님의 감동을 경험했을까요? 그때를 사무엘상 16:13절에 다윗이 성령에 감동을 받은 것은 베들레헴에서 사무엘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을 때에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구약에서 이미 다윗은 성령님에 감동되어 왕으로써 통치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라 고백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성경을 읽고 난 이후에 여러분 안에서 말씀하시는 이가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을 받고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성령님이 임하실 때에 같은 주제 같은 말을 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한 분이시기 같은 마음을 갖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구약에 예언 된 말씀이 해석이 됩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해석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이후에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했다고 말씀하듯이 베드로도 성령님의 충만을 받고 난 이후에 천년 전에 다윗도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였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욜 2:28절 그 후에 행 2:17절에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과 오순절 사건이 임했다는 것은 우리가 말세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AI 시대에 살고 있는데 더 발전 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아닙니다. 말세가 왔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바울도 말세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갈라디어서 4:4절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절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절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왜 말세의 때 오셨는가? 율법과 죄 그리고 사망 권세 묶여 있는 자들을 구속, 속량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도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 공생애 시간에는 잘 몰랐습니다. 성령님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따라 다닐 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경험하고 나니깐 이 진리만을 다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 하셨음을 온 이스라엘 백성이 다 알아야 한다고 담대하게 이 진리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고 비전을 받게 됩니다. 자녀들이 성령을 받고 난 후에 책을 보기를 좋아하고,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성령을 받고 자녀들이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한 숨 쉬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늙은이들이 나는 명태 당하고 관광지나 다니면서 쉬려고 합니다라고 말하시 마십시오. 늙으이들이 성령을 받으면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내 꿈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을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가지게 되면 지치지도 않습니다.
말세에는 우리에게 시간을 많이 없음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왜 성령을 받게 하셨는가? 성령을 받아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하셨음을 알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 받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하게 하시고, 이것을 듣고 믿는 자마다 구원받게 하게 하시려 합니다.
왜 젊은이들이 낙담하는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을 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만 커지지만 나만 구원 받고 예배 잘 드리면 되지! 삶의 변화도 중요하고, 착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시만 그것이 성령충만이 아닙니다. 성령충만은 복음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교회 모이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가 교회의 본질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을 때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사도 바울은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는 말씀을 인용하여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여호와(아도나이)를 주(퀴리오스) 바꾸어서 여호와가 바로 주님으로 오신 분이심을 증거하듯이 전합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구약의 히브리어로 된 맛소라 성경을 본 것이 아니라 70인역의 헬라어 성경을 보았음을 알게 해 줍니다. 하지만 또한 여호와가 인간의 몸을 이 땅에 성육신 하신 주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구약에서도 아브라함이 미래에 오실 예수님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엘서 2:32절에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을 증명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창세기 15:6절에서 미래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마음으로 먼저 복음으로 전해진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고, 미래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입술로 고백하면서 그는 구원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의(예수님) 때(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를 볼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미래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과 부활하심을 과거에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당시에 이삭 대신에 죽을 어린양을 통해서 십자가에 죽이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것을 그당시에 보았습니다. 대적의 성문을 차지한다는 것은 왕이 다른 나라를 점령할 때에 그 나라 왕의 머리를 밟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만왕의 왕이 되셔서 대적 사탄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음을 성취하셨다는 원복음이 성취됨을 그 그당시에 보고 기뻐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도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다윗도 주님을 만난 후에 주라고 고백함이 선포되어 지는 시간입니다. 이는 베드로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난 이후에 다윗도 성령의 충만을 받아 항상 앞에 계신 주님과 십자가와 부활 뿐만 아니라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심을 보았다고 선포하며 설교를 하는 본문입니다.
베드로는 행 2:33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경을 전과 다르게 해석합니다. 보여지지 않던 말씀이 성령충만한 관점으로 해석 되어지고, 구약의 인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았음을 믿게 됩니다.
특별히 성경의 흐름 잘 파악하여 시대적 흐름에 민감하며 지금을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 힘써서 일할 때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성령님의 사역들이 신학적으로 정립이 안 되면 성령운동하는 하는 것에 무관심하게 되고, 성령운동이 대해 부정적인 관점으로 정의하여 반대편에 서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이 전하고 있는 성령충만은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는데 사명을 받는데 필수 조건입니다.
25절에 주님의 헬라어는 무엇이며 구약에서 다윗은 어떻게 항상 앞에 계신 주님을 뵐 수 있었을까요?
베드로는 성령에 충만하여 시편 16:8절을 인용하여 15개의 민족에게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려도 하나님께서 죽이지 않을 것 혹은 죽여도 다시 살릴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활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헬라어는 (퀴리오스: κύριος)로 다윗은 성령의 충만할 때에 주님이 항상 함께 하심과 예수님의 부활과 하나님의 우편에 앉에 계신 주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요동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면서 요동치 않았던 것은 그가 항상 앞에 계신 주님을 보았고, 부활 신앙을 지녔기 때문에 그가 흔들리지 않았다고 베드로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5절에 다윗이 항상 우편에 계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다윗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70인역의 성경을 보았다. 여호와를 큐리오스로 보고 큐리오스 주님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복음 증거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인물이 됩니다. 사탄 권세 아래 있던 사람들을 점점 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30절에 베드로는 다윗이 선지자로 미리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고 말합니다. 성령님은 시간을 넘어 서게 합니다. 땅의 시간을 살지 않고 하늘의 시간으로 뛰어 넘어 하늘의 삶을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행 2:24,31절 베드로는 성령님을 받고 난 이후에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사망 권세에 묶여 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사망권세에 묶여 있을 수 없는 성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고, 죽임 이후의 삶을 더 갈망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의 중요함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잠시 이 곳에 살고 있음을 깨달으면 죽음이 두렵지 않고, 욕심을 버리고 복음 증거자의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예수님께서 버려지심을 당하지 않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을 미리 보았습니다.
에이덴 베드로 당시에 과거형으로 당하지 아니 하셨습니다. 다윗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과거에서 본 부활을 예언한 선지자였고, 베드로는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고 다윗이 전했던 말씀을 이해하고, 예수님의 부활 하심을 직접 경험한 예수님의 부활의 확증하는 선포자였습니다.
베드로는 33절에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심으로 성령을 보내 주셨음을 선포합니다. 베드로는 다윗이 35절에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후 승천하신 이후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심도 알고 있다고 전합니다.
베드로는 시 110:1절을 인용합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난 이후에 말씀이 하나님의 뜻대로 해석하고, 우리에게까지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게 해 주심을 전하는 것입니다(요 14:26, 15:16)
원수는 발등상되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심은? 33절에 높이시매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심으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내려 가셨다가 부활과 승천을 통해 다시 영광스러워 지심으로 신분적 이동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성령 충만할 때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에 다른 삶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묵상하면 화가 나고, 냄새가 납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을 받은 후에 예수님을 묵상하면 사랑과 희생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36절에 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으로 구원이 충분함을 고백하기 바랍니다.
불 받은 것이 그리스도의 말씀보다 복음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불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음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을 통해 복음을 바든 현대 교회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 받도 도와야 하고, 복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인의 충만하게 돌아 올 때까지 잠시 우둔하게 되었지만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돌아오면 온 이스랑엘 백성이 다시 구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방인인 한국 교회가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면 마지막 땅끝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이 증거 될 때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음을 알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재촉하는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것이 먼 섬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모을 것이라고 선포해야 할 이방인들의 사명입니다.
다음과 같은 3가지 기도 제목으로 함께 기대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다윗이 성령님의 충만을 받고 주 예수님을 만났는지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인 한국 교회가 다시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시작된 구속사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완성되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도록 복음을 전해야 함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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