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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여 자녀들에게 이렇게 신앙 전수하라

1세기 유대인들이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를 자녀들에게 가르쳐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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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세기 이후에 1세기 유대인들이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 나눠보려고 합니다. 특별히 Getting in은 칭의로 처음 들어가는 차원을 말합니다. 태어난 이후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들어가는지에 대해서 나누는 것입니다. Staying in은 처음들어가서 천국갈때가지를 포함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된 유대인은 그의 구원을 어떻게 유지하는지에 대한 관점이라고 보면 됩니다. 

1. 전통주의 

Getting in(들어감): 유대교는 들어가는 때부터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백성이 되어 보려는 차원 입니다.  

Staying in(머뭄): Getting in과 연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머무는 단계도 율법을 지킴으로 유대교의 구원을 유지한다는 이론 입니다. 

2. 새 관점주의(샌더스)

Getting in(들어감): 유대교는 은혜의 종교로, 처음들어 갈때는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갑니다.

Staying in(머뭄): 머무는 단계로 율법에 순종하고 지킴으로 신분을 유지하는 단계,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구원을 이미 얻고, 신분을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샌더스,제임스 던의 견해 차이: 샌더스는 사도 바울은 율법의 행위와 공로, 구원의 종교를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으며, 유대인들의 민족주의적과 인종주의적인 종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았다고 주장합니다.

제임스는 바울은 유대인들이 따르는 할례, 안식일을 지키는 법, 정결을 유지함(음식을 가림, 이방인들과 어울리 지 않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견해와 이방선교에 대해 사회학적 개념으로 이해 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톰 라이트는 바울의 신학에는 십자가의 전가의 의미를 약화시켰으며, 구원을 종말론적인 유보의 관점으로 해석했습니다.

3. 절충주의(김세윤)

Getting in(들어감): 새관점주의에 Getting in을 받아드림, 즉 들어가는 단계는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으로 들어갑니다.

Staying in(머뭄): 머무는 단계는 행위로 이뤄짐, 은혜를 유지하느냐? 못하느냐는? 행위를 보고 알수 있음,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은혜를 빼앗길수도 있다고 여김, 칭의(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와 성화(믿음/세례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된 사건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를 포함)를 같은 의미로 보았습니다. 김세윤은 전통주의의 법정적 이해(14:10, 살전 5:23, 1:10-11, 고후 5:18)와 새관점 학파의 관계적 이해, 그리고 종말론적 유보를 지지하였습니다(고전 10:1-11).

4. 계시적 관점(이한수)

Getting in(들어감): 오직 믿음으로만 Getting in할 수 있음, 유대인의 관점은 자신들이 구원에 들어가 있다고 여기지만, 바울의 관점은 유대인들이 처음부터 구원의 단계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여깁니다. 

Staying in(머뭄): 오직 믿음으로만 유지 할 수 있음, 행위로는 구원에 이룰 수 없습니다. 9:27절 믿음으로 남은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음정하신 자 부르심, 부르신자 의롭다 하심, 의롭다 하신자를 영화롭다 하십니다(바울의 관점).

5. 최근 핫한 새관점 주의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하기

샌더스는 유대교가 어떤 종교를 가졌는가를 탐구하였습니다. 유대교가 율법을 지켜서 공로로 인정 받는 것이 아니라 언약적 율법주의 종교였다고 정의합니다.

1) 샌더스는 언약적 율법주의를 8가지 명제로 정리합니다.

(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일반적으로 은혜로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노릇 하시겠다고 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 2) 언약의 개념을 위해 율법을 주셨습니다.

( 3) 율법은 그들의 선택을 지탱하시겠다는 약속을 표현한다. 율법은 언약을 표현합니다.

( 4) 유대인들도 율법을 지킴으로 언약을 지탱해야 합니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를 담고 있습니다.

( 5) 하나님은 그들의 순종은 상주시고 불 순종은 벌주신다. 18장의 율법을 지키면 천대가 축복 받고, 어기면 삼대가 저주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율법을 어기고, 우상을 섬기고, 이방 여인들과 살려고 하고 불의를 자행하였습니다.

( 6) 율법은 속죄의 수단을 제공한다. 율법에는 죄들에 대한 속죄(회개, 성전에서 동물의 죽음)를 통해 용서를 받아 하나님과 언약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하는 속죄 제사가 성전제사에 들어있다. 율법에는 속죄의 수단들이 들어 있습니다.

( 7) 속죄는 언약의 관계를 지탱하거나 회복시켜 줍니다.

( 8) 율법에 대한 순종, 속죄 또는 하나님의 자비로 언약 속에 지탱된 사람들은 모두 종국에 구원을 받습니다.

끝까지 언약 관계를 부인하고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은 빼고 조금 부족해도 구원받는다고 주장하였다랍비 신앙에 가면 조금 부족해도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다 구원 받는다는 이론이 성립 됩니다.

샌더스는 유대교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언약(구원)의 관계에 진입하고 율법을 지킴으로 그 관계 속에 머무르는 종교였습니다. 유대교가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이뤄 내는 종교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이미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들어 있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1-1)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

샌더스는 언약적 율법주의를 처음으로 주장한 학자였습니다.

( 1) 샌더스: 예수님 당시에 1세기 유대교는 율법주의가 아닌 언약적 율법주의입니다(1970년대).

비판: 1세기 유대교는 언약적 율법주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 경향이 함께 공존했습니다.

바울은 원래 유대교 신학자였고 다메섹 도상 회심 사건 이후에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 만큼 유대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던 사람이었다면 샌더스의 관점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1세기 유대교 안에 전통주의만 있었던 것으로 여겼지만 언약적 율법주의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 2) 샌더스: 은혜로 언약백성의 신분으로 가입하고, 언약백성의 신분을 율법준수로 유지합니다.

비판: 선행이 구원의 유지를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되므로 일종의 율법주의입니다. 즉 처음은 은혜이지만 유지가 율법준수이기 때문에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종의 율법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언약백성의 신분으로 가입하고, 믿음으로 신분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노라하고 악행을 방자히 행하는 것은 믿음의 타락(믿지 않았의 상태가 된다). 언약백성의 신분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는 행함의 준수이전에 믿음의 준수가 우선이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성도의 의도적, 지속적 악행믿음을 져버린 것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 히 3:18-19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나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 가지 못한 것이라

즉 히브리서 기자는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행함도 흔들리고, 행함이 없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은혜로 언약백성의 신분으로 가입하고, 언약백성의 신분을 믿음으로 유지한다고 말이 되어야 합니다.

2) 던의 율법/율법의 행위

제임스 던은 샌더스의 견해가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율법의 행위라는 바울의 숙어를 예전과 같이 모든 율법의 규례를 지킴을 뜻하는 것으로 보지 말고, 유대인들의 하나님의 언약 백성 됨의 표징들과 이방인들로부터 그들을 구분하는 법들인? 할례, 안식법, 정결/음식법에 대해 바울은 유대교에 대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유대교 비판은? 바울은 유대교가 의와 율법의 행위, 공로 구원의 종교라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민족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종교에 대해 비판합니다. 바울은 유대교가 율법의 행위를 하는 자신들만 선민이라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자신들에게만 극한 시키고, 이방인들은 제외시키는 배타성을 가진 종교라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제임스 던은 율법의 행위들에 대해 율법을 다 지킴으로 구원 받았다는 전통주의가 틀린 것을 주장합니다. 그는 유대교가 이방선교적 상황과 사회학적 개념으로 이해하며 바울의 견해를 주장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됨을 표징하는 3가지로 주장하는 것은? 할례, 안식일을 지키는 법, 정결(성결)을 유지함/음식을 가림(이방인과 어울리지 않음)이라고 합니다.

( 1) : 바울의 유대교나 율법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유대교나 율법 자체를 비판 한 것이 아니라, 유대민족의 정체성 역할을 하고 있는 율법, 할례, 유대 음식법 등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유대인과 이방인의 동등성을 방해하고, 구원은 유대인들에게만 있다는 우월적이고 배타적인 사상을 가지겨 오기 때문에 그 점을 비판한 것입니다(이것을 율법 및 율법의 행위에 대한 사획적 해석이라고 합니다).

이는 바울이 로마서나 갈라디아 등의 서신서에서 율법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이나 율법이나 할례, 유대 음식법 등에서 비판할 것은 유대인의 행위가 잘못 된 것이 아닙니다. 던의 주장은 유대인 민족들의 정체성을 하고 있는 할례나 안식법, 정결법/음식이 이방인들과 동등성을 방해하고, 구원은 유대인들에게 있다는 우월적이고 배타적인 것을 비판했다는 것입니다.

비판: 바울이 사용하는 율법, 율법의 행위를 단순히 유대인의 민족적 특성, 혹은 이방인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분하는 정체성의 표현으로만 제한시킬 수 없습니다. 단지 바울이 율법을 비판한 것이 정체성의 표현에만 구한해서 비판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다메섹 사건을 통해서 율법 및 율법의 행위들이 죄의 근본 분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과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통하여 율법의 요구를 친히 담당하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즉 바울은 율법이나 율법의 행위를 유대인의 민족적 배타성 혹은 표지라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말하기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의의 구원의 수단의 될 수 없다는 구원론적 관점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해석은? 사회학적 관점도 있지만 구원론적 관점이 주 관점이었습니다.

3) 라이트의 이신칭의재해석

( 1) 라이트: 이싱칭의가 바울복음의 본질적 요소임을 반대합니다. 이신칭의는 바울의 이방인 선교현자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논쟁교리로서 바울복음의 핵심이 아닌 부산물”입니로마서에서 이신칭의가 나오는데 이방인 선교 현장에서 이신칭의가 논쟁교리였으며, 핵심이 아니라 부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비판: 바울은 이신칭의 가르침과 그의 복음을 서로 분리시키지 않았으므로, 이신칭의는 그의 복음의 중심내용입니다. 그의 복음에는 항상 이신칭의가 항상 따라 왔습니다.

( 2) 라이트: 이신칭의가 구원론의 주제임을 반대한다. 하나님의 의는 구원론적 용어가 아닌 교회론적인 용어입니다. 하나님이 언약적 신실성이나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신분을 말하는 용어입니다.

무슨 말이냐? 우리는 이신칭의가 구원론적인 주제로 여깁니다. 하지만 라이트는 구원론적 용어가 아니라 교회론적인 용어로 보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신분을 받기 위해서 이신칭의가 교회론적인 용어로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비판: 이신칭의의 교리가 교회론적, 선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울복음의 중심주제라고 말하거나, 이신칭의로부터 구원론적 의미를 배제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구원은 우성 죄와 죽음과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의 구원(하나님과 죄인의 화해)이고, 다음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제거를 통한 구원(즉 인간과 인간의 화해가 뒤 따라 오는 것이다)입니.

라이트의 말대로 이신칭의는 구원론적인 주장이 우선이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제거인 교회론적인 주장이 뒤 따라 오는 것입니다.

( 3) 라이트: “전가의 교리를 반대합니다. 전가의 교리는 법적 허구내지 범주적 오류이다. 칭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 공동체 안에 있다신분에 대한 선언으로 제한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시키고, 예수님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킨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중요한 전가의 교리인데 라이트는 이 전가가 성경적이지 않으며, 잘못 되었다고 주장합니다하나님의 언약 백성 공동체 안에 있다는 선분에 대한 선언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비판: 개혁주의가 말하듯이 능동적 의의 전가(율법의 완수)가 직접적으로 전가되는 것은 성경에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의 의를 수동적 의와 함께 죄 사함을 위한 것은 명확합니다그런 의미에서만 전가의 교리는 성경적다. 또한 칭의에는 신분에 대한 선언의 의미도 포함됩니다.

( 4) 라이트: “믿음을 믿는 대상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로 이해하기보다는 대상에 대한 신실성의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비판: 믿음의 전통적인 의미는 주로 바울 서신에 발견되는 지식(복음)에 대한 동의와 인격체(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러나 구약에서의 믿음은 사실 신실함”, “충성됨으로 거의 표현되고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가르침 또한 이를 뒷밥침 합니다이 신실함은 행위로 표현되기 이전에 언약을 맺은 대상과 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의 의지 내지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라이트난 새관점 학자들이 말하는 행위로서의 신신실함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올바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의 중심(의지)”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구약의 믿음의 정의를 통합적으로 내린다면, 첫째, “지식에 있어서 동의, 둘째 언약의 대상에 대하여 신뢰”, 셋째 언약의 관계에 대해서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지가 될 것입니다. 이 세가지 어느 것에도 행위는 포함되지 않지만 이 믿음이 올바르다면 비록 완전하지 않지만 반드시 행위는 산출되게 됩니다이런 점에서 라이트는 지금까지 강조되지 않았던 믿음의 일면을 드러내준 기여를 하였습니다.

( 5) 라이트: 칭의는 현재적인 칭의최종적인 심판에서 주어지는 칭의로 두 가지 이중 칭의로 나눕니다. 전자는 믿음에 의해 결정되어지지만 후자는 신자의 전 삶(행위)”에 의해 결정됩니다.

결론: 

하지만 새 관점주의는 한국교회와 많은 신학자들에게 이단적인 요소들이 많다고 공격을 받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네 번째 견해인 계시적 관점을 따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기로 정하신 남은자가 있다는 견해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을 통해 주어진 모든 민족이 받을 복(창 12:3절), 성령의 약속을 통해서 복음(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것입니다)을 받은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견해입니다. 

지금까지 19세기 이후에 1세기 유대인들이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 나누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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